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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66)
장기성 2017-09-21 추천 1 댓글 0 조회 96

13:11-14. 종말에 가질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단락은 임박한 세상 끝 날에 그리스도인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 교우들이 알고 있듯이 이 시기를 자다가 깨어나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것도 벌써 되었다고 하여 그 긴급성을 일깨우고 있다. ‘이 시기’(τοτο καιρς, this time)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 종말의 때를 가리킨다. 이 시기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된 것은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세상의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이미’(already)그러나 아직은 아니’(but not yet) 사의의 종말론적 긴장’(eschatological tension)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주의 재림이 가까우니 우리의 구원의 완성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적인 잠에 빠져서는 안 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주께서는 도적이 오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재림하실 것이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24:42-44). 주께서 홀연히 와서 우리가 자고 있는 것을 보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경계하셨다(13:36).

 

12절 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깨어 있는 삶에 대한 예시이다. 종말의 현 시기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운 시기이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권유한다. 바울은 여기서 윤리적 은유와 전투적 이미지를 동원한다. 먼저 윤리적 은유로 우리가 낮이 밝아오면 밤에 입은 잠옷을 벗고 낮의 활동에 적합한 옷을 입는다. 여기 어둠의 일’(τὰ ἔργα τοσκτους)이란 어둠의 행실’(the deeds of darkness)를 가리킨다. 바울은 13절에서 어둠의 행실의 예를 몇 가지 들고 있다. , 방탕한 것(과도하고 호사한 향연, 연회를 가리킴), 술 취하는 것, 음란, 호색, 다툼, 시기 등이다. 신자들이 벗어야 할 어둠의 일은 과도한 음주, 성적 방종, 분쟁과 시기심 등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종말을 살아가는 신자들은 이러한 죄악 된 어둠의 행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둠이 지배하는 죄악 된 세상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신자들은 어둠의 행실은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이는 전투적 이미지로 빛의 갑옷은 빛 된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곧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13절에서 예를 든 어둠의 행실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어둠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났다. 이것이 곧 새 사람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3:10).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자들(고후 5:17)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삶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지만 바울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이미아직은 아니사이의 종말론적 긴장구조 가운데 놓여 있다. 신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추구하되,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단락을 어거스틴(Augustinus)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 Aurelius Augustinus(354-430, 현재 북아프리카 튀니스와 동 알제리의 Thagaste 출생, Hippo 주교)

눈물의 아들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A son of so many prayers can not be lost).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을 위해 17년간 기도한 경건한 어머니 모니카(Monica). 아우구스티누스는 16세부터 부모의 동의 없이 동거 생활하여 사생자를 낳았고, 당시 이단인 마니교에 빠져 있었다. 그의 고백록(Confessions, 회심 14년 후인 46세에)에 보면 그가 32세 되던 해 로마의 밀라노(Milano)에 가서 주교의 설교에 큰 감화를 받은 후 영혼의 고통과 고뇌를 안고 무화과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저쪽 건물 위층에서 톨레 레게, 톨레 레게(tolle lege, tolle lege. 라틴어로,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라고 말하는 장난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명령하시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일어나서 그의 숙소로 가서 성경을 펴서 눈이 가는 곳을 읽었다.

그가 읽은 곳이 로마서 13: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거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가 그를 강하게 비추었고 그는 온전히 회심하게 되었다. 그는 그 후 신학을 공부하고 그리스도교 역사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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